내가 상황과 타협하지 않는, 한번 정하고 절대 바꾸지않는 원칙들
어떤 상황에서든 좋은 감정을 유지하겠다.
나의 기분은 나를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를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나를 위해 필요한 감정만이, 좋은 감정이다.
지금 이 상황에, 지금 이 감정이 필요한가?
옳다면 계속 유지하라!
그르다면 바꿔라!
내게 필요한 것이 좋은 것이다.
생명체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유전자를 유지, 증식하는 것이다.
나의 유전자를 유지, 증식하는 것만이 좋은 것이다.
이게 나의 유전자를 유지, 증식하는데 도움이 되는가?
이게 나에게 도움이 되는가?
행동할 때, 선택할 때, 365일 1년내내
나는 "이 행동이 나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가?"를 질문할 것이다.
지금은 현대 사회다.
인간은 다른 인간과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은 남들의 도움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
그 누구도 자신의 혼자의 힘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세상에 나 혼자 덩그러니 떨어져있다면,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통째로 사라질것이다.
부모님이 차려주시는 밥상,
매일 같이 자고 일어나는 우리집,
내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까지,
모두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창조한 것들이다.
나는 남들에게 빚지면서 살아간다.
남들도 나에게 빚지면서 살아간다.
이처럼 우리는 땔 수 없는 관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존해야 하는 운명이다.
공존하지 않으면, 우리가 한계는 너무나 낮아진다.
공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을 모색하자.
어느한쪽에 치우쳐져 있다면 어서빨리 균형을 되찾자.
그것이 우리의 행복과 부를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
공존하지 않으면 이익을 독차지 할 수 있다.
공존하면 이익을 나누어야 한다.
공존하지 않으면 이익을 적게 얻는다.
공존하면 이익을 많게 얻는다.
공존하지 않고 적게 얻는 것과
공존하고 적게 얻는 것
우리의 선택지는 위의 두가지다.
공존하면 남들과 좋은 사이를 유지할 수 있다.
공존하지 않으면 남들과 좋은 사이를 유지할 수 없다.
공존하든 하지않든 얻는 이익은 비슷하다.
하지만 공존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사회에서 고립된다.
공존을 원하는 사람은 사회속에서 끈끈하게 이어진다.
공존을 원하지 않는 것은 자살 행위이다.
자신의 안위만을 바라는 것은 자살 행위이다.
공존을 원하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다.
공존은 선택적인게 아니라, 필수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공존을 원하지 않는 사람을 받아줄 필요가 있을까?
나는 왜 공존을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가?
세상엔 도와줘야 하는 사람과, 도와줘선 안되는 사람이 있다.
공존을 위해서, 공존을 원하지 않는 사람을 배척해야 한다.
그들이 공존을 원한다는 것을 몸으로 증명하지 않는 이상.
공존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밑빠진 독이다.
그들이 독을 고치기 전까지, 그들에게 물을 주지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