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에게는 잔인한 면이 있었다.
그는 상대를 바닥에 내팽겨쳐야 적성이 풀렸다.
아무리 기를 써도 그의 공격을 막아 낼 수 없었다.
그는 너무도 빨랐다.
그의 움직임을 볼 수 없는데 어떻게 그의 공격을 피할 수 있겠는가!
긴장은 절대 금물!
하지만 그가 다가올 때마다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화물열차같이 육중한 그의 몸이 하룻밤에도 50번이나 나를 밟고 지나가는데
어떻게 긴장을 풀 수 있단 말인가!
도장에 갈 때마다 2가지 선택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반을 피하거나 아니면 내 몸이 만신창이가 되거나,
수개월간 나는 이반의 샌드백이었다.
말이 쉽지 벽에 박치기당하는 상황에서 "실패에 투자하라"라는 말을 진정으로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매일밤 벽에 머리를 부딪쳐야 했다.
대련이 끝나면 온몸은 피멍투성이었다.
내가 꿈꾸던 평화로운 명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아주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우선 이반의 공격에 익숙해지자,
그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내 몸은 이제 그의 공격에 대한 저항력이 생겼고,
그것을 흡수하는 법을 배웠으며,
무슨 공격을 당하든지 감당할 자신이 생겼다.
그이 집중공세에 여유를 갖게 되자 왠지 그의 동작이 이전보다 느려보였다.
그러자 난 그의 공격을 사전에 감지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서 그의 의도를 읽고 그가 공격의 화살을 당기기 전에 피할 수도 있었다.
이반의 공격을 무력화하는데 점점 능숙해지자,
그의 약점을 간파하고 이용하기 시작했다.
때로는 그의 손이 슬로모션으로 내게 돌진하는 장면을 여유있게 지켜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역전되는 순간이 찾아왔다.
난 점점 강도 높은 훈련을 꾸준히 계속해왔고 미들급 전국선수권도 2번이나 석권했으며
세계선수권대회도 준비중이었다.
한동안 이반과는 대련하지 않았다.
내 실력이 점점 향상되자 그가 슬슬 나를 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첸 사범은 나와 이반을 매트 위에 세웠다.
대련이 시작되자 난 황소처럼 달려드는 이반을 순식간에 바닥에 내던졌다.
이반은 육중한 몸을 일으켜 다시 내게 달려들었고
이번에도 역시 그를 던져버렸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나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몇 분 후 이반은 발이 아프다면서 그만 끝내자고 했다.
우리는 악수를 나눴고
그는 그후로 다시는 나아 겨루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 둘 사이의 관계를 돌이켜볼 때,
난 이반의 행동에 어떤 악의가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이반은 꽤 괜찮은 사내였다.
몸을 사리거나 자세 한번 흐트러지는 법 없이 진지하게 대련에 임하는 그의 태도는 정말 본받을 만했다.
만일 내가 현실에 안주했다면 이반을 만날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건장한 체구의 이반은 힘이 장사였다.
경험이 없는 격투기 선수에겐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는 바람에 오히려 무술의 좀더 미묘한 요소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
이반은 실패에 투자하지 않았다.
그는 나와의 대련을 자신의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을 수도 있었는데,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