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도 공동체에 유용한 협력 대신에 절망의 행동을 선택한 결과다.
재산이나 일자리의 상실, 사랑의 좌절, 그밖에 온갖 종류의 강등에 대처하지 않고
가족이나 다른 사람의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형태의 절망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들은 너무 많이 기대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쉽게 삶의 실망을 체험한다.
충격에 예민하고, 이로 인해 불쾌해진 기분이 오래 지속되거나
다른 사람을 처벌할 목적으로 자신을 상해하는 성향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사례의 대부분이 아동기의 신체적 열등과, 부모의 응석받이로 인해
공동체 감정의 충분한 발달이 저지된다는 사실이 증명될 것이다.
또, 분노의 노골적인 또는 은밀한 폭발,
크고 작은 온갖과제를 타인에게 떠넘기기,
자신의 품위에 대한 집착 등이 드물지 않게 발견된다.
가족 중 막내로서 평소 어머니의 극진한 응석받이 속에 살아온 17세의 소년은
어머니가 먼 여행을 떠나면서 누나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어느 날 저녁 누나가 그를 홀로 집에 놔두었을 때,
마침 학교에서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어려움에 직면한 소년은 자살을 감행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내가 한 짓을 어머니에게 알리지 말아 주세요.
어머니의 현재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머니가 돌아오면, 사는 것이 더 이상 즐겁지 않았으며,
내 무덤에 매일 꽃을 놓아달라고 전해 주세요."
그런가 하면 불치병에 걸린 한 나이 많은 여성 환자는
이웃이 라디오와 떨어지지 않으려 한다는 이유로 자살했다.
한 부잣집 운전기사는
부자가 죽을 때 그에게 약속한 유산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아내와 딸을 죽이고 스스로도 목숨을 끊었다.
56세의 한 여성은
남편으로부터 늘 떠받듦을 받으며 살았으며
사회에서도 탁월한 지위에 있었는데,
남편이 죽은 후로 큰 슬픔에 잠겼다.
자녀들은 모두 결혼했으며 어머니를 특별히 섬기지는 않았다.
그는 사고로 대퇴골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는데,
부상이 완쾌되었음에도 사회를 멀리했다.
그는 집에서 찾을 수 없었던 친교와 자극을 찾아 세계 여행을 떠나고 싶어 했다.
두 동성 친구와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대륙의 신도시에서 두 친구는
거동이 불편한 이 여성을 늘 혼자 놔두었다.
이 때문에 이 여성은 심기가 매우 불편해졌고,
이것은 우울증으로 발전했다.
그는 한 자식에게 자신을 데리러 오라고 연락했는데,
그 대신에 한 간호사가 와서 그를 집으로 데려갔다.
내가 이 여성을 만난 것은 3년에 걸친 이 여성의 고통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을 때다.
그의 주된 불편은 자식들이 자신의 병 때문에 너무 힘들어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식들은 어머니를 교대로 방문했으며,
어머니의 고통이 오래 지속된 탓에
둔감해져서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환자는 늘 자살하고 싶다고 말했으며
자식들이 너무 고생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이 여성은 비록 병들기 전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이 여성이 습관처럼 말하는 자식들의 걱정과 관심이
실제로는 응석 둥이로 자란 그가 기대했던 헌신에
전혀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도 분명했다.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질병을 통해 힘들게 얻은 관심을 포기하기가
이 여성에게 얼마나 어려울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