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석둥이는 온갖 어려움에 직면하며
자신의 욕망에 반하는 사람에 대해 격고하고
심지어 살인 충동을 느끼기까지한다.
이는 응석을 받아 주는 잘못된 양육이 빚어낸 인공물이다
아동기의 가장 오래된 기억에 대한 그들의 견해는 유용하다.
한 18세 소녀는 부모와 늘 불화를 겪으며 살았다.
부모는 딸의 학업 성적이 매우 좋았기 때문에
딸이 대학에 진학하길 바랬다.
그러나 딸은 대학 진학을 거부했는데,
왜냐하면 학교 시험에서 1등을 하지 못해서
실패가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딸의 가장 오래된 아동기 기억은 다음과 같았다.
이 소녀는 네 살 때 어린이 축제에서
다른 아이가 거대한 공을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심한 응석둥이였던 소녀는 이와 비슷한 공을 얻기 위해 막무가내로 떼를 부렸다.
아버지는 온 도시를 헤매고 다녔지만 이와 비슷한 공을 찾을 수 없었다.
원하는 것보다 작은 공을 본 소녀는 소리쳐 울면서 공을 뿌리쳤다.
그러다 아버지가 공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서야
비로소 울음을 멈추고 작은 공을 손에 쥐었다.
나는 이 기억을 바탕으로
이 소녀가 따뜻한 설명을 받아들일 줄 안다고 직감했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는 이 소녀에게 이기적인 야망이 강하다는 점을 설명해
소녀의 태도를 바꿀 수 있었다.
다음 사례는 종종 미래의 운명을 예상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보여준다.
열 살 연상의 여자와 결혼해 오랜 세월을 함게 보낸
42세의 한 남성이 발기부전 증상에 시달렸다.
그는 2년전부터 아내나 두 자식과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직업적으로도 꽤 성공을 거두었으나,
그때부터는 사업도 소홀히 해서 가정 형편도 많이 기울었다.
그는 어머니의 총애와 응석받이 속에 성장했다.
그가 세 살 때 여동생이 태어났다.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이불에 오줌을 싸기 시작했다.
또한 그는 어릴 적에 무서운 꿈을 꾸곤 했는데,
이것은 우리가 응석둥이에게서 자주 발견하는 현상이다.
우리가 보기에 그의 야뇨증과 공포 증상은
어머니의 사랑을 다시 독차지하려는 시도에서 비롯했음에 틀림없었다.
물론 야뇨증은 어머니에 대한 비난 또는 심지어 복수의 표현으로 볼 수도 있다.
학교에서 그는 매우 모범적인 아이였다.
그의 기억에 따르면 학창 시절에 자신을 놀린 아이와
딱 한 번 싸움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때 선생님은 어떻게 이렇게 착한 아이가 성을 낼 수 있을까 하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우리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듯이
그는 타인의 인정을 독차지하도록 훈련되어 있었으며
이런 방식으로 다른 아이들을 앞서는 것을 우월의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이것이 실현되지 않을 경우 그는 비난 또는 복수 같은 수단을 사용했는데,
이런 동기는 그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분명하게 이해되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에게 나쁜 아이로 보이지 않으려는 것도
( 나쁜 행동을 고치지 않으면서, 나쁜 아이로 보이지 않으고 함 )
그가 다분히 이기적으로 추구한 완전의 목표의 일부였다.
그가 스스로 강조한 것처럼 그는 연상의 여자와 결혼했는데,
그 이유는 그 여자에게서 어머니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제 50세가 넘은 아내가 자식을 돌보는 데 주로 신경을 쓰자
그는 외양상 공격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가족 모두와 관계를 끊어 버렸다.
발기부전도 이런 관계 단절과 결부된 신체 기관의 표현이었다.
이제 우리는 그가 어린 시절에 여동생이 태어났을 때처럼
주위 사람들의 떠받듦을 더 이상 받지 못하게 되면 표현은 명확하지 않지만
효과는 명확한 비난 행동을 보인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두 아이 중 첫째로 성장한 30세의 남성은
반복된 절도 행위로 오랜 시간을 교도소에서 보내야 했다.
그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만 2세 때 남동생이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의 것이었다.
"어머니는 늘 동생 편이었어요.
그래서 나는 어릴 적부터 집을 뛰쳐나오곤 했어요.
때로는 배고픔 때문에 집 안팎에서 작은 도둑질을 하곤 했어요.
그러면 어머니는 내게 가혹한 처벌을 내렸는데,
그럴 때마다 도망쳐서 위기를 모면했어요.
학교에서는 열네 살이 될 때까지 중간 정도의 학생이었지만,
더 공부할 마음이 없어서 혼자 거리를 배회하곤 했어요.
집이 싫었어요. 친구도 없고,
간절히 원했지만 나를 사랑하는 여자아이도 없었어요.
사람들을 사귀기 위해 댄스홀에 가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어요.
그래서 자동차를 훔쳐 싼값에 팔았어요.
이때부터 도둑질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고,결국 교도소까지 가게 된 거지요.만약 내가 늘 꾸짖음만 들었던 집을 그렇게 싫어하지 않았다면,내 인생이 달려졌을지도 몰라요.그러나 나는 도둑질을 부추긴 장물아비의 꼬임에 넘어가는 바람에도둑질을 계속하게 됐어요."
이미 지적했듯이 범법자의 어린 시절을 살펴보면 한때 응석둥이였거나응석을 받아주는 사람에 대한 갈망이 큰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그리고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이런 사람은 아동기에 이미 비교적 강력한 활동성이 감지되는데,이것은 용기와는 다른 것이다.위에서 언급한 남성의 어머니가 아이의 응석을 받아 주는 사람이라는 사실은둘째 아들에 대한 태도에서 엿볼 수 있다.남동생의 출생 후 이 남성이 분한 심정을 드러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그도 이전에는 어머니의 응석받이를 체험했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그 후 그의 운명을 좌우한 것은한편으로는 어머니에 대한 분노와 비난이었고다른 한편으로는 충분한 정도의 공동체 감정이 결여되어범죄의 길로 빠져들게 된 그의 활동성이었다.
최근에 일부 정신과 의사가 그런 것 처럼범죄가 교도소에 들어가고 싶은 욕망과결부된 자기 처벌이라는 견해를 공공연히 떠들어대는 사람은인간의 정신을 모독하는 뻔뻔함을 드러낼 뿐이다.